개념의 기원

개념의 기원

다윈에게 라이엘의 책이 그랬듯, AI가 우리 시대의 『지질학 원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블로그.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책장 사이를 건너다니던 습관은 심리학과 철학으로 이어졌고, 3년의 팟캐스트와 2018년부터의 글쓰기 모임이 이 블로그의 기반이 됐습니다.

이 블로그에 대하여

1831년, 스물두 살의 다윈은 비글호에 오르며 책 한 권을 챙겼다.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1권. 항해 중에 읽으라고 건네받은 책이었다. 단, 믿지는 말라는 당부와 함께.

당시 사람들에게 지구의 나이는 길어야 수천 년이었다. 그 시간 안에서 생명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가설은 틀린 것이 아니라, 아예 세워질 수가 없었다. 수천 년은 무언가가 서서히 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니까.

라이엘의 책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계곡은 하루아침에 파인 것이 아니다. 강물이 아주 오랫동안, 지금도 하는 일을 반복해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시간은 수천 년이 아니라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길어야 했다. 다윈은 항해 내내 이 눈으로 지층을 읽었고, 배에서 내릴 무렵 그의 머릿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크기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진화론은 그 다음에 왔다. 순서가 중요하다. 새로운 증거가 새 이론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먼저 넓어졌고, 그래서 이전에는 세울 수 없던 가설이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 개념이 확장되면 단지 아는 것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의 범위 자체가 달라진다. 다윈에게 라이엘의 책이 준 것은 답이 아니라, 더 큰 질문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었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제로'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과 후의 수학. '무의식'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과 후의 인간 이해. '정보'가 물리량이 되기 전과 후의 과학.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개념들에는 저마다 기원이 있고, 그것이 태어나기 전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서 생각하며 살았다.

이 블로그는 그 지점을 파헤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개념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것이 있기 전에 사람들은 어떤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보았는지. 그것이 생긴 뒤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지금, AI가 있다. 나는 AI가 우리 시대의 『지질학 원리』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본다', '이해한다', '생각한다', '의식'. 인간만의 것이라 여겨 한 번도 정의할 필요가 없던 개념들이 기계 앞에서 처음으로 심문받고 있다. 이 심문이 끝났을 때 우리의 사고방식이 어디까지 넓어져 있을지, 이전에는 세울 수 없던 어떤 가설이 세워지게 될지. 그것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이 이 블로그가 하려는 일이다.

다윈은 훗날 자신의 눈이 절반은 라이엘의 것이라고 썼다. 좋은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생각의 크기를 바꿀 수 있다면, 여기 쓰이는 글들도 누군가에게 그런 책의 한 페이지가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소개

고등학교 때 수능 공부보다 도서관 책장 사이를 건너다니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아무 책이나 뽑아 읽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문제집만 빼고 모든 게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오래 머문 책장은 심리학이었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을 시작으로 낡은 심리학 책들을 읽으며 마음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생태 철학을 만났습니다. 『천 개의 고원』을 시작으로 들뢰즈와 가타리를 읽었고, 자연스레 다른 철학까지 손이 닿았습니다.

그러나 제 지식의 가장 단단한 부분은 과학, 그중에서도 컴퓨터 과학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해커를 꿈꾸며 컴퓨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보안 전문가로 일하며 그 길을 걸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뒤, 앞으로 변할 IT 세상을 모험하고 싶어 창업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모험 중입니다.

이 블로그에는 세 개의 기반이 있습니다. 삼 년간 매주 친구들과 책과 영화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했습니다. 그때 소개한 작품들이 첫 번째 기반입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글쓰기 모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기반입니다. 세 번째 기반은 동네 카페입니다. 미대를 나온 사장님은 질문이 많은 분입니다. 그분에게 이런저런 과학 이야기를 들려드리다 보니, 어느새 그 이야기가 카페 단골들에게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그 구전들이 이 블로그의 세 번째 기반입니다.

이 블로그로 얻고 싶은 것은 소박합니다. 제 지식을 한번 정리해두고 싶습니다. 요즘 들어 옛날에 알던 것들이 마치 남의 것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몸의 세포는 사흘에서 길게는 칠 년이면 거의 새것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기대어, 다른 누구도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해, 과거와 지금의 잔재를 여기 적어두려 합니다. 미래의 내가 이 글들을 남의 글처럼 읽게 되더라도, 좋은 남이기를 바라면서요.

진정한 삶은 마흔부터 시작된다. 그전까지는 그저 자료 조사에 불과하다.

— 카를 융

자료 조사를 마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읽을까

전체 일곱 편은 연재 순서에서 차례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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