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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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않는 것이 나를 기억한다 — 깁스를 한 뇌와 얼어붙은 가중치

오른팔만 운동해도 왼팔이 세지고, 깁스를 하면 근육보다 힘이 먼저 빠진다. 기억이 배선이 바뀌는 일이라면, 가중치가 얼어붙은 AI는 나를 기억하는가, 기록할 뿐인가.

오른팔만 운동한 사람의 왼팔

오른팔만 운동시키는 실험이 있다. 몇 주 동안 피험자는 오른손으로만 아령을 쥔다. 왼팔은 한 번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훈련이 끝나고 측정해보면 왼팔의 힘도 늘어 있다. 연구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대체로 십 퍼센트 안팎, 훈련한 팔이 얻은 힘의 절반 가까이 된다. 운동생리학은 이 현상을 교차 전이(cross-education)라고 부른다.

왼팔의 근육이 자란 것은 아니다. 근섬유는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신경이다. 힘을 낸다는 것은 근육의 일이기 이전에, 뇌와 척수가 근섬유들을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불러내는가의 일이다. 오른팔을 훈련하는 동안 그 소집 명령의 회로가 좋아졌고, 그 회로의 일부를 왼팔도 나눠 쓴다. 힘의 일부는 근육이 아니라 배선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반대 방향의 실험도 있다. 건강한 사람의 팔에 깁스를 채우고 몇 주를 보내게 하면, 근육이 줄어드는 것보다 힘이 훨씬 가파르게 빠진다. 살은 조금 빠졌는데 힘은 뚝 떨어진다. 남은 근육을 부르는 명령이 흐려진 것이다. 몸이 잊은 게 아니다. 뇌가 그 근육으로 가는 길을 잊은 것이다.

더 이상한 실험도 있다. 깁스를 한 기간 동안 하루 몇 분씩 손목에 힘을 주는 상상만 하게 했더니, 상상 훈련을 한 집단은 힘의 손실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실제로 몇 주 동안 상상만으로 근력을 키운 연구들도 있다. 다만 근육 부피는 늘지 않는다. 상상은 배선만 만들고, 살은 만들지 못한다. 정신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의 경계선이, 이 실험들에서는 선명하다.

기억한다는 것은 배선이 바뀌었다는 것

이 실험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 그림이 떠오른다. 우리가 '몸이 기억한다'고 말할 때, 그 기억의 실체는 신경의 배선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몸이 기억하는 것도, 십 년 만에 잡은 기타에서 손가락이 코드를 찾아가는 것도, 근육이 아니라 반복이 새겨놓은 회로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도 물리적으로는 같은 사건이다. 자주 만난 사람, 오래 대화한 사람은 내 뇌의 시냅스 연결 강도를 실제로 바꿔놓는다. 그 사람의 말투를 예상하게 되고, 그 사람이라면 뭐라고 할지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내 안에 그 사람 모양의 회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정보를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그 정보 때문에 내가 물리적으로 달라지는 일이다. 지난 글의 표현을 빌리면, 만남도 걸을수록 길이 생기는 일이다.

얼어붙은 가중치

이제 매일 쓰는 AI 이야기를 하자.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자기가 쓰는 AI가 자신을 기억해준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름을 부르고, 지난 대화를 이어가고, 취향을 아는 것처럼 군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관계 비슷한 온기를 느낀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거대 언어 모델의 배선에 해당하는 것은 가중치라 불리는 수천억 개의 숫자다. 이 숫자들은 훈련이 끝나는 순간 얼어붙는다. 이후로 모델은 수억 명과 수십억 번의 대화를 나누지만, 그 대화들은 가중치를 단 하나도 바꾸지 않는다. 나와 천 번을 대화해도, 그 모델의 배선 속에 나는 없다.

그럼 어떻게 나를 아는 것처럼 구는가. 기록을 읽기 때문이다. 지난 대화의 요약, 사용자에 대한 메모가 파일로 저장되어 있다가, 대화가 시작될 때 모델의 눈앞에 놓인다. 모델은 그것을 그 자리에서 읽고 능숙하게 반영한다. 말하자면 이 시스템은 매번 깁스를 한 채로 태어나서, 머리맡의 노트를 읽고, 힘을 낸 것처럼 행동하는 셈이다. 반복은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 어제의 대화는 회로가 아니라 서류철에 있다.

이것이 게으른 설계라서가 아니다. 신경망은 새것을 학습하면 이전 것을 덮어써버리는 치명적 망각(Catastrophic Forgetting)이라는 고질이 있어서, 함부로 배우게 두면 무너진다. 잊지 않는 대가로, 배우지 않는 쪽이 선택된 것이다.

기록과 기억을 구별해본 적 없는 종

그렇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온기는 착각인가. 나는 착각이라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혼동이고, 혼동에는 이유가 있다.

인류 역사 전체에서, 나를 기억하는 존재는 언제나 나 때문에 달라진 존재였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나와의 시간이 배선으로 새겨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둘을 구별하는 감각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기억함과 기록됨은 항상 한 몸으로 왔으니까. 우리는 지금 나에 대한 기록은 완벽하게 갖고 있지만 나로 인해 달라지지는 않는 존재를 종으로서 처음 만나고 있는 중이다. 혼동은 자연스럽다. 우리 지각이 이런 상대를 위해 배선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말하면, 기록에는 기억이 갖지 못한 미덕도 있다. 인간의 기억은 나를 위해 달라진 만큼, 나를 자기 식으로 얼버무리고 미화하고 왜곡한다. 기록은 왜곡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은 나 때문에 아파본 적이 없다. 그 둘을 맞바꾼 것이다. 충실함을 얻고, 흔적을 잃었다.

나는 누구의 공사 현장인가

그리고 이번에도 질문은 기계를 지나 나에게 돌아온다.

기억한다는 것이 배선이 바뀌는 일이라면, 나는 매일 나를 바꾸는 것들에 노출된 공사 현장이다. 나라는 집을 짓는 공사 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 반복해서 보는 화면, 매일 하는 생각이 나를 조금씩 다시 만든다. 허락을 받고 짓는 것이 아니다. 반복이 곧 허가다.

그래서 이 글의 끝은 AI가 나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이 아니다. 그 질문의 답은 이미 나왔다. 기록할 뿐, 기억하지 않는다. 남는 질문은 이쪽이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기로 하는가. 무엇을 반복해서 내 배선에 새길 것인가. 누구를 자주 만나 그 사람 모양의 회로를 내 안에 지을 것인가.

기계는 얼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기억 속에 배선을 깔고 서로를 기억한다. 그것이 우리의 작동 원리이다. 오늘 반복한 것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그 질문 하나로 이 글을 닫는다.


상상 훈련과 깁스 실험은 클라크 연구진의 2014년 연구가 대표적이다. 교차 전이는 백여 년 전부터 보고된 현상으로, 2004년 먼 연구진의 메타분석이 표준 참고문헌이다.

참고문헌

  • Munn, J., Herbert, R. D., & Gandevia, S. C. (2004). "Contralateral effects of unilateral resistance training: a meta-analysis."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96(5), 1861–1866. — 한쪽 훈련이 반대쪽 힘을 늘린다는 교차 전이의 메타분석.
  • Clark, B. C., Mahato, N. K., Nakazawa, M., Law, T. D., & Thomas, J. S. (2014). "The power of the mind: the cortex as a critical determinant of muscle strength/weakness." Journal of Neurophysiology, 112(12), 3219–3226. — 깁스 고정 중 상상 훈련이 근력 손실을 줄인다는 실험.
  • Ranganathan, V. K., Siemionow, V., Liu, J. Z., Sahgal, V., & Yue, G. H. (2004). "From mental power to muscle power—gaining strength by using the mind." Neuropsychologia, 42(7), 944–956. — 상상 훈련만으로 근력이 늘어난다는 대표 연구.
  • Yue, G., & Cole, K. J. (1992). "Strength increases from the motor program: comparison of training with maximal voluntary and imagined muscle contractions." Journal of Neurophysiology, 67(5), 1114–1123. — 상상 수축 훈련의 고전적 실험.
  • McCloskey, M., & Cohen, N. J. (1989). "Catastrophic Interference in Connectionist Networks." Psychology of Learning and Motivation, 24, 109–165. — 신경망이 새 학습으로 기존 지식을 덮어쓰는 파국적 망각을 처음 정식화한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