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기원
약 2분

배선도만 옮겼을 뿐인데

예쁜꼬마선충이라는 벌레가 있다. 몸길이 1밀리미터 남짓, 신경세포는 딱 302개. 1986년, 과학자들은 이 302개가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전부 그려냈다. 한 동물의 신경망 전체를 담은 최초의 지도, 커넥톰이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이다. 누군가 이 연결 지도를 레고 로봇에 그대로 옮겨 실었다. 센서는 선충의 감각 뉴런에, 모터는 운동 뉴런에 이었다. "이렇게 움직여라"는 명령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로봇이 장애물에 부딪히자 뒤로 물러났다. 먹이를 찾는 것처럼 방향을 틀었다. 배선도만 옮겼을 뿐인데, 행동이 따라왔다.

선충에서 초파리로

최근에는 초파리 뇌 전체의 연결 지도가 공개됐다. 뉴런은 약 14만 개. 선충의 세 자릿수에서 여섯 자릿수로, 배선의 규모가 단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그 지도를 내려받아 각자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

302개에서 14만 개까지 40년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진전의 대부분은 최근 몇 년에 몰려 있다. 다음 단계가 나오는 데는 아마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설렘과 서늘함이 동시에 온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설렜다. 생명을 이해하는 새로운 문이 열린 것 같았다. 동시에 등 뒤가 조금 서늘했다.

배선도만 옮겼는데 행동이 따라온다면, 나라는 것도 결국 배선에 불과한 걸까. 내가 내 것이라고 믿는 취향과 망설임과 마음의 방향이, 어느 날 파일 하나로 내려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물론 지금의 레고 로봇을 선충의 뇌를 이식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결의 모양은 알아도, 각 연결이 얼마나 강한지 같은 세부는 많이 가정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도 "배선이 곧 행동"이라는 그 장면 하나가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두려움은 사실이 아니라 프레임에서 온다

같은 초파리 시뮬레이션을 두고 누군가는 "생명을 복제했다"고 말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정교한 모델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은 하나인데, 사회가 받는 감정은 정반대가 된다.

유전자 변형 작물과 줄기세포, 생성형 AI가 이미 같은 길을 걸었다. 소수의 호기심이 자극적인 은유를 타고 막연한 불안이 되고, 그 불안이 어느 선을 넘으면 규제나 열광으로 터져 나온다. 커넥톰도 아마 비슷한 길을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서늘함을 한 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 감정은 사실에서 온 걸까, 아니면 이미 누군가 지어준 이야기에서 온 걸까.

어디서부터 마음인가

302개짜리 선충 시뮬레이션을 두고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14만 개짜리 초파리도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그다음, 그다음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시뮬레이션은 뭔가를 느끼는가"를 물어야 하는 선이 온다.

문제는 그 선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느낀 서늘함의 정체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모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충은 아무렇지 않게 레고 로봇 안에서 제 길을 갔다. 그 로봇을 보며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지가, 어쩌면 선충보다 우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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