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소리가 아니라 맥락에 있다
LP로 들어야 음악이 더 좋다는 사람들이 있다. LP는 아날로그고, 컴퓨터에서 나오는 소리는 디지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LP에 파인 골도 결국 파형이고, 파형은 0과 1로 옮길 수 있다. LP에서만 나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도 디지털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디지털은 새지 않는다
기술적으로는 내 직관이 대체로 맞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대략 20킬로헤르츠까지다. 그 두 배보다 조금 빠르게 소리를 떠내면, 원래 파형을 수학적으로 완전히 복원할 수 있다. 샘플링 정리라는 증명된 사실이고, CD가 44.1킬로헤르츠를 쓰는 이유다.
"디지털은 계단처럼 끊겨서 뭔가 새어 나간다"는 말은 흔한 오해다. 우리 귀가 듣는 범위 안에서는 새지 않는다. 실제로 음악 프로듀서들은 바이닐 시뮬레이터로 LP의 잡음과 따뜻한 왜곡을 일부러 입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LP가 더 좋다고 느낀다
이유는 소리 바깥에 있다. 하나는 LP가 실제로 다르게 들린다는 점이다. 더 정확해서가 아니라, 마스터링이 다르고 아날로그 특유의 왜곡이 더해져서다. "더 좋은" 소리가 아니라 "다른" 소리다.
다른 하나는 소리와 아예 상관없다. 큰 재킷, 판을 얹고 바늘을 내리는 의식, 한 면을 끝까지 듣게 되는 몰입, 모으는 즐거움. 이 모든 게 뇌에서 "더 좋게 들린다"는 느낌으로 번역된다.
그러니까 정보는 완벽히 같아도, 사람이 느끼는 진짜는 다를 수 있다.
AI가 쓴 시에 감동이 식는 이유
이 구조를 AI에 그대로 옮겨보면 흥미롭다. AI가 쓴 시가 사람이 쓴 시와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아도, "이건 AI가 썼대"는 한마디에 감동이 식는다.
LP와 똑같다. 음파는 같은데 "이건 바이닐이야"라는 맥락이 경험을 바꾼다. 우리가 AI 창작물에 느끼는 거부감의 상당 부분도 결과물이 아니라 출처라는 맥락에 붙어 있다.
바이닐 시뮬레이터를 두고 "이건 진짜 LP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마음과, AI 예술을 두고 "이건 진짜 감정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마음은 같은 구조다. 흉내 낸 왜곡은 진짜 왜곡이 아니라는 것.
한쪽에선 그리워하고, 한쪽에선 두려워한다
우리는 LP의 불완전함을 사랑한다. 잡음과 왜곡을 따뜻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AI에게는 완벽한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을 요구한다.
같은 사람이 한쪽에서는 불완전함을 그리워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완전함을 두려워한다. 그 경계는 어디서 갈리는 걸까. 아마 그 불완전함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를 해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언젠가 AI가 만든 알 수 없는 흔들림을 LP의 지지직거림처럼 따뜻하다고 느끼는 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진짜와 가짜를 가르던 선은 소리도 정보도 아닌 곳에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