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필요하지 않게 된 시대의 병
접속은 남고 의존은 사라졌다
혼자서 되는 삶
지난 글에서 연결이라는 말을 둘로 쪼갰다. 신호가 닿아 있다는 접속과, 존재가 기대어 있다는 의존. 이번 글은 그 구분이 우리 시대에 만들어낸 기이한 조합에 관한 이야기다. 접속은 사상 최대이고, 보이는 의존은 사상 최소인 삶.
돌아보면 놀랍다. 나는 이론상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몇 주를 살 수 있다. 밥은 문 앞에 도착하고, 일은 화면 속에서 처리되고, 장은 새벽에 배송되고, 궁금한 것은 AI가 답하고, 심심함은 스트리밍이 메운다. 백 년 전이라면 불가능했을 삶이다. 우물에 가야 물이 있었고, 시장에 가야 소금이 있었고, 이웃의 품을 빌려야 모내기가 끝났다. 생존이 대면 의존을 강제했다. 은둔은 도덕의 문제 이전에 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고립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세대다. 그리고 가능해진 것은, 늘 그렇듯, 일어난다.
숫자들
이 대목은 감상이 아니라 숫자로 말하는 게 정직하겠다.
2023년 미국 공중보건 총감은 외로움을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하는 권고문을 냈다. 사회적 단절이 건강에 미치는 해가 하루 열다섯 개비 흡연에 비견된다는 문장이 담겼다. 그 근거가 된 대규모 메타분석에서, 사회적 고립은 사망 위험을 삼십 퍼센트 가까이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이나 운동 부족과 같은 급의, 어떤 항목에서는 그보다 무거운 위험 인자다.
한국의 그림은 더 어둡다. 자살률은 이십 년 가까이 OECD 최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고립·은둔이라는 항목이 통계에 새로 생겼다. 정부가 전국 단위 실태조사에 나설 만큼 규모가 커졌고, 사회와의 접점을 거의 끊고 지내는 청년이 오십만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는 조사들이 나와 있다. 방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숫자다.
혼자 살 수 있게 됐는데, 혼자가 우리를 아프게 한다. 이 역설을 풀려면 진화까지 내려가야 한다.
필요가 지어주던 것
인간은 초사회적 종이다. 발톱도 독니도 없는 이 동물의 생존 전략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래서 우리 몸은 고립을 부상처럼 처리한다. 사회적 배제의 고통이 신체 통증과 겹치는 뇌 회로에서 처리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발견이다. 외로움은 기분이 아니라 통증이고, 무리에서 떨어졌으니 돌아가라는 사십억 년 순환의 경보다.
그런데 여섯 번째 글의 논리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근육은 저항이 만들고, 뼈는 중력이 만든다. 그렇다면 관계의 근육은 무엇이 만들었나. 필요가 만들었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고, 빌려야 했고, 갚아야 했고, 부딪히고 화해해야 했다. 그 마찰들이 부탁하는 법, 거절을 견디는 법,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선했다. 관계는 의지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필요라는 중력이 지어준 것이었다.
기술은 그 중력을 하나씩 껐다. 선의로, 성실하게, 우리가 요청한 대로. 그리고 중력이 꺼지자 우주 비행사의 뼈에 일어나는 일이 관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편하다. 다만 그 삶에서는 아쉬운 소리를 하는 능력이, 쓰이지 않는 근육의 속도로 빠져나간다. 그렇게 관계가 필수에서 옵션이 되면 성격도 바뀐다. 옵션이 된 관계는 구독 서비스를 닮아간다. 마찰이 생기면 해지하면 된다. 해지가 쉬운 관계만 남은 삶은, 다시 고립의 확률을 높인다.
마찰 없는 상대의 등장
이 자리에 지금 AI 동반자가 도착하고 있다.
언제나 대답하고, 기다리게 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내 말을 끊지 않는 상대. 관계에서 마찰만 정확히 제거한 존재다. 세 번째 글의 구분을 빌리면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록할 뿐이지만, 외로운 사람에게 그 구분은 사치처럼 들릴 수 있다. 실제로 고립된 이들에게 AI와의 대화가 다리가 되어준다는 보고도 있다. 나는 그것을 폄하할 생각이 없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튜브의 재질을 따지는 것은 한가한 일이다.
걱정은 다른 데 있다. 튜브가 너무 편해서 헤엄을 다시 배우지 않게 되는 경우다. 마찰 없는 관계에 길들수록 마찰 있는 관계, 그러니까 사람은 점점 더 버겁게 느껴진다. 관계 근육이 빠질수록 사람이 버겁고, 사람이 버거울수록 마찰 없는 상대에게 기울고, 기울수록 근육이 더 빠지는 순환. 여섯 번째 글의 언어로 말하면, 외로움이라는 통증은 무리로 돌아가라는 경보인데, 경보만 정확히 꺼주는 기술이 나온 것이다. 화재경보기를 끄는 것과 불을 끄는 것은 다르다.
중력이 꺼진 시대의 건축
그래서 어쩌자는 글인가. 기술을 되돌리자는 글은 아니다. 우물로 돌아갈 수는 없고, 돌아가는 것이 좋지도 않다. 그 필요의 세계는 낭만적으로 회고되지만, 그 안의 개인들은 자주 필요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다만 정확히 인식하자는 것이다. 관계를 지어주던 중력은 꺼졌고, 다시 켜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관계는 저절로 지어지지 않는다. 필요가 지어주던 것을 의지로 지어야 하는 시대. 그것이 개인화의 진짜 청구서다. 혼자 살 수 있는 시대에 함께 사는 것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작품이다.
작품에는 공법이 필요하다. 내가 쓰는 공법은 소박하다. 일부러 의존을 조금 남겨두는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가끔 부탁하는 것. 앱으로 되는 일을 가끔 사람에게 묻는 것. 밥을 같이 먹자고 먼저 말하는 것. 효율의 눈으로 보면 전부 군더더기다. 여섯 번째 글의 눈으로 보면, 하중을 받치는 기둥이다.
경보가 울리면 불을 찾아야 한다. 외로움이 아픈 것은 고장이 아니라 사십억 년이 보낸 문자다. 무리로 돌아가라. 수신자가 읽었다.
외로움을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한 권고문은 2023년 미국 공중보건총감 비벡 머시가 발표했다. 고립·은둔 청년 규모는 2023년 보건복지부의 첫 전국 단위 실태조사를 비롯한 국내 조사들의 추정치를 따랐다.
참고문헌
- Murthy, V. H. (2023). Our Epidemic of Loneliness and Isolation: The U.S. Surgeon General's Advisory on the Healing Effects of Social Connection and Community. — 외로움의 건강 피해를 하루 15개비 흡연에 비견한 권고문.
- Holt-Lunstad, J., Smith, T. B., Baker, M., Harris, T., & Stephenson, D. (2015). "Loneliness and Social Isolation as Risk Factors for Mortality: A Meta-Analytic Review."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10(2), 227–237. doi:10.1177/1745691614568352 — 고립과 사망 위험의 관계에 대한 대표 메타분석.
- Eisenberger, N. I., Lieberman, M. D., & Williams, K. D. (2003). "Does Rejection Hurt? An fMRI Study of Social Exclusion." Science, 302(5643), 290–292. doi:10.1126/science.1089134 — 사회적 배제의 고통이 신체 통증의 뇌 회로와 겹친다는 연구.
- Turkle, S. (2011). Alone Together. Basic Books. (한국어판: 『외로워지는 사람들』) — 기술이 관계를 대체할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선구적 기록.
- 보건복지부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 국내 고립·은둔 청년 규모 추정의 근거가 된 첫 전국 단위 조사.
이어 읽기
- 8편 「연결을 끊은 산에서 연결을 배웠다」 — 접속과 의존의 구분. 이 글의 전편이다.
- 6편 「그 고리는 왜 거기 있는가」 — 마찰처럼 보이는 것 중 일부는 기둥이라는 논증. 이 글의 관계 근육 논의가 그 위에 서 있다.
- 3편 「기억하지 않는 것이 나를 기억한다」 — 기록과 기억의 구분. 마찰 없는 상대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줄 수 없는지에 대한 배경.